산허리에 간신히 걸려있는 구름 한 자락에 한 눈을 팔았다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.

횡계IC로 나갔어야 했는데, 나가는 곳을 뒤로하고 초고속으로 고속도로를 냅다 달려버린 것.

그렇게 우린 계획에 없던 강릉 땅까지 밟게 되었다.

강릉까지 와버린 우리의 손에는 지도 한 장 들려있지 않았지만,

친절한 내비게이션 씨가 곁에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.

친절한 내비게이션 씨는, 늘 그래왔듯이 우리를 가장 짧고 간결한 코스로 신속하게 안내해 주었다.

웬만해서는 다닐 일이 없어진 그 곳, 대관령 옛길로.


대관령 옛길이라 하면,

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 구간이 개통되기 전에 이용되던 꼬불꼬불한 산길을 말한다.

초등학교 6년 내내, 이상하게도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는 늘 동해바다였다.

지도를 펼쳐놓고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로 해마다 다녀온 해수욕장을 표시해보면

그 일대가 모두 새카맣게 칠해져서 지도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지겹도록 동해바다만 갔었다.

그 때마다 넘어야하는 대관령 고개는 늘 여행길을 고행 길로 바꾸어놓곤 했다.

뜨겁게 내리쬐는 땡볕 아래, 차 안에 갇혀서 이리저리 치우쳐가며 멀미를 하고 있자면

아무래도 여행이라기보다는 고행 길에 가까워지지 않았겠는가.

새 길이 난 후 대관령 옛길과는 영영 작별할 것이라 생각 했는데,

이 길과 나는 아무래도 깊이가 남다른 인연이 있나보다.


양 옆으로 허리짬까지 차오른 눈이 쌓여있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곡예 하듯 달렸다.

부드럽게 이어지는 도로는 운전면허 시험장과 다를 바 없었는데,

시험에서 똑 떨어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절벽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.

그래도 아직 살날이 남아 있었는지 저승사자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.


 

설경에 한 눈을 팔았다가 쉽게 갈 수도 있었던 길을 구지 어렵게 돌고 돌아서 도착한 대관령 양떼목장.

다행이도 일기예보에서 보았던 -17도, -25도는 온데간데없었다.

동장군도 한파를 몰고 오느라 무리를 했는지, 잠시 휴식 중인 듯 했다.

내복에다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, 뜨뜻한 털옷에 목도리를 칭칭 감은 것으로도 부족해서

차에 굴러다니던 꾀죄죄한 담요까지 뒤집어쓰고 나타난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.

다만, 내 다리 길이만큼 쌓여있는 눈이 일주일 전 폭설과

몰아쳤던 한파의 흔적으로 오롯이 남겨져 있었다.

손 씻는 곳이었음이 분명했던 자리에는 눈 속에 파묻힌 초라한 표지판의 일부가 남아있었고,

화장실 터로 짐작되는 문 앞에는 뽀얀 눈들이 그득그득 한 자리를 차지했다.



눈 쌓인 길을 뽀드득 밟으며 산 위로 올라갔다.

9시 반만 되어도 무시무시한 관광버스가 떼로 몰려온다는 소문을 입수,

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 마냥, 뒤도 안 돌아보고 다급하게 산을 마구 기어올랐다.

그토록 다급했던 이유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설경을 마주하고 싶은 욕심에서, 였다.



산꼭대기는 간밤에 세차게 불었던 바람 흔적이 그대로,

누군가가 그려 놓은 하트를 제외하고는 눈 쌓인 모양새도 그대로였다.

잎이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앙상한 나뭇가지에는

흰 눈이 총총 내려앉아 다시금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다.

마치 꽃이 핀 것처럼 화사해진 겨울나무가 생기 있는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.



한 겨울, 강원도만큼 추위를 즐길 수 있는 곳도 흔치 않다.

이제 한 달 남짓 남은 겨울, 냉큼 백설나라 강원도로 향할 때다!


    Posted by 깔깔              

강원도

강원도 기간 2008.1.27 ~ 2008.1.27 (1일) 컨셉 도시를 떠난 휴양&자연여행 경로 강원도 → 평창 → 대관령양떼목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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